* ‘왕의 길’을 걸으며 다시 을 생각한다.(추령 백년찻집-추령터널입구-추원마을-모차골-추원사-수렛재-불령봉표-용연폭포-기림

* ‘왕의 길’을 걸으며 다시 을 생각한다.(추령 백년찻집-추령터널입구-추원마을-모차골-추원사-수렛재-불령봉표-용연폭포-기림사-안동삼거리/13km)

토함산은 불국사를 품은 경주의 동악으로, 함월산과 마주 본다. 두 산 사이를 구불구불 넘어가는 추령은 옛날부터 경주 시내와 동해를 연결하는 중요한 고개다.
새로 생긴 추령터널 위 고개가 추령(재)이다.
(추령재 정상에는 백년찻집이 있다.)

아버지가 잠든 문무대왕릉을 찾기 위해
궁궐을 출발한 신문왕의 행차는 토함산과 함월산 사이 수렛재를 넘어 천년 고찰 기림사에 이른다.
추령재에서 ‘왕의 길’로 갈라지는 이정표
‘왕의 길’ 이란?
왕의 길 초입에서 출발전 인증샷을 남기고…
(왕의길 안내 지도)

추령에서 출발하는 ‘왕의 길’은 신문왕이 마차를 타고 아버지 문무왕의 묘를 찾아가는 길이자 나라를 구원할 힘을 얻은 길이다.
또 이보다 앞서 문무왕의 장례 행렬이 지나간 길이기도 하다.

처음엔 ‘신문왕길’ 또는 ‘신문왕 호국행차길’이라 불리다가 현재는 공식적으로 ‘왕의 길’로 불리고 있다. 이는 비단 신문왕만 다니지는 않았을 테고, 여러 왕들이 동해로 행차하며 이 길을 지나갔을 것이라는 추측에 따른 것이다.
이길에 있는 지명인 ‘모차골’은 마차골, ‘수렛재’는 수레를 타고 넘는 재로 이해하면 되겠다.‘왕의 길’은 애시당초 ‘신문왕길’, ‘신문왕 호국행차길’ 등으로 불리다가 이젠 ‘왕의 길’로 부르게 되었다.
모차골에 들어서면 황용약수가 반겨 준다.
(수렛재에 도착했다. 수렛재는 수레가 다니는 길의 재라는 뜻이다)

수렛재를 넘어 조금 더 걷다보면 불령고개에 남아있는 ‘불령봉표’ 표지석를 만난다.
‘불령봉표’ 비석은 조선후기 1831(순조31. 23대) 10월에 새긴 비석으로, 순조의 아들 익종(1809-1830)을 모신 연경묘의 봉제사와 고급숲 백탄을 만들기 위해 경비를 조달하는 산이니 나무가 많이 필요해 벌채를 막기 위해 표시한 비석이다.,불령봉표 비석의 비문을 해석해 보면
[연경의 묘에 쓸 향탄(목탄)을 생산하기 위한 산이므로 나무를 베지 못하도록 임금의 명을 받아 불령고개에 경계표시(봉표)를 세운다] 라고 쓰여 있다.

용연폭포는 용의 전설을 품고 시원하게 쏟아진다.
신문왕이 만파식적과 함께 얻은 옥허리띠의 한 조각을 물에 넣자 용이 돼 승천하며 이 폭포가 만들어졌다고 전한다.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하면 신문왕이 돌아가신 문무왕과 김유신 장군이 내려주는 보물인 만파식적 대나무와 함께 얻은 옥대를 가지고 환궁할 때 마중 나온 어린 태자의 예지로 옥대의 용 장식 하나를 떼어 냇물에 담그니 용으로 변해 승천하고 내는 깊이 패어 연못과 폭포가 생겨났다고 한다.
용연폭포에서 800m가량 내려가면 불국사보다 먼저 지어졌다는 고사찰 기림사를 만나게 된다.
기림사는 643년(선덕여왕 12) 천축국(인도)의 승려 광유가 임정사라는 이름 으로 창건했고,
선덕여왕 때 원효대사가 중창하면서 기림사로 사찰 이름이 바꼈다고 전해진다. 기림사 극락전
극락전 부처님
극락전 문창살은 정교하며 소박하고 아름답다.
삼천불전에는 삼천개의 부처님을 모시고 있다.
삼천불전 앞에선 삼천만의 땡날라리 상보
기림사 경내에 아름답게 핀 수국
(상보! 꽃 길만 걷자.)

비로자나불이 있는 기림사 넓은 경내를 한 바퀴 휘 둘러보며 왕의 길 트레킹을 마무리하려고 했으나 대중교통의 연결이 어려운 탓에 안동리 삼거리까지 4km를 더 걷고서야 트레킹을 마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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